이사를 다니며 늘 마지막까지 남는 짐
이사할 때마다 끝까지 못 버리고 따라오는 상자가 있습니다. 그 짐들의 공통점과, 그걸 보관으로 넘길지 정리할지 가르는 지점을 적었어요.
이사를 몇 번 하다 보면 매번 같은 상자가 따라옵니다. 열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실려 다니는 상자요. 이삿짐 목록에는 늘 있는데 새집에서는 늘 베란다로 가는 그 상자예요.
그 안에 든 것들은 대개 셋 중 하나예요. 언젠가 쓸 것 같은 물건, 값을 치르고 산 기억이 아까운 물건, 그리고 남이 준 물건. 셋 다 지금 쓰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버리기가 어려운 이유는 서로 달라요.
첫 번째는 그나마 판단이 되는 쪽이에요. 지난 두 번의 이사에서 한 번도 안 열었으면 다음에도 안 열어요. 여기에는 시간이라는 증거가 이미 쌓여 있어요. 2년에 한 번씩 이사하셨다면 그 상자는 이미 4년을 안 열린 거예요.
두 번째가 제일 질겨요. 값을 치른 기억이 물건에 붙어 있어서, 버리는 순간 그 돈을 다시 잃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 물건은 이미 산 순간에 값을 치렀고, 지금 보관하면서 또 값을 치르는 중이에요. 창고 한 칸이 월 10만원 안팎이라는 국내 셀프스토리지 요금 조사를 놓고 계산해 보면, 안 쓰는 물건 하나에 매달 얼마를 더 내고 있는지가 나와요. 한 칸의 절반을 그 상자들이 쓰고 있다면 매달 5만원어치 자리를 안 쓰는 물건에 내주고 있는 셈이에요. 1년이면 60만원이고, 그 돈이면 그 상자 안의 물건 대부분을 다시 살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물건이 아니라 관계라서 계산이 안 돼요. 이건 저도 아직 답을 못 냈습니다. 다만 그 물건을 준 사람이 지금 그 물건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대개 맞아요.
보관으로 넘길지 정리할지는 결국 이 질문 하나로 갈려요. 다음에 이 상자를 열 날짜를 지금 적을 수 있는가. 적을 수 있으면 보관이고, 못 적으면 미루기예요. 이사 공백처럼 날짜가 정해진 보관은 나가는 날과 들어가는 날이 벌어질 때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상자 겉면에 열 날짜를 적어 두는 방법을 씁니다. 그날이 와서 안 열면 그때는 답이 나온 거예요.
미루기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미루기에도 값이 붙는다는 것만 알고 미루면 됩니다. 그 값을 알고 나서도 두시겠다면 그건 이미 결정이고, 결정한 보관은 미루기가 아니거든요.
짐을 맡기려는 분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부터 다룹니다. 실외냐 실내냐, 얼마냐, 상하지 않느냐. 답이 갈리는 자리는 추측으로 넘기지 않고 직접 재 보거나 공개된 기준과 대조한 범위 안에서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