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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는 물건을 못 버리는 이유

안 쓰는 줄 알면서도 못 버리는 물건이 왜 생기는지, 버리기가 왜 유독 힘든 종류의 일인지, 결정을 미루는 대신 쓸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적었어요.

이용철 창고 자료실 편집 담당 · 발행 2026-09-15
읽는 시간 2분

안 쓰는 물건을 못 버리는 이유는 물건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버리는 일이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쓰는 물건에는 결정이 필요 없어요. 손이 가면 쓰고 안 가면 그냥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버리는 순간에는 앞으로 안 쓴다는 판단을 내가 직접 내려야 해요. 판단에는 틀릴 위험이 붙고, 사람은 틀릴 위험이 붙은 일을 나중으로 미룹니다.

미루기가 편한 이유는 미룬 티가 안 나기 때문이에요. 상자를 하나 더 쌓아 두는 데는 아무 비용도 드는 것처럼 안 보이거든요. 방 구석에 놓인 상자는 청구서를 보내지 않아요. 그래서 미룬 결정이 몇 개나 쌓였는지 세어 볼 일도 없고요. 대신 자리를 조금씩 가져가고, 그 자리는 나중에 다른 형태로 값이 붙어요.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물건의 문제로 안 봅니다. 결정을 언제 내릴 것인가의 문제로 봐요. 국내 셀프스토리지 이용자의 약 80%가 1인 가구라는 국내 셀프스토리지 이용자 조사를 보면 이 말이 좀 더 선명해져요. 집이 좁을수록 미룬 결정이 눈앞에 더 자주 보이고, 그래서 더 급하게 어디론가 치우고 싶어지거든요.

미루기를 없애자는 말은 아니에요. 지금 못 정하는 일은 실제로 있어요. 부모님 물건이 그렇고, 지난 일에 붙어 있는 물건도 그래요. 이런 건 오늘 억지로 버리면 나중에 후회가 남아요.

다만 미룰 때 한 가지만 같이 정해 두시길 권해요. 이 물건을 언제 다시 볼지, 그날 무엇을 보고 정할지. 예를 들면 "내년 봄에 열어서 한 번도 안 꺼냈으면 그때 보낸다" 같은 문장이요. 이 한 줄이 있으면 미루기가 유예가 되고, 없으면 그냥 방치가 돼요. 이사할 때마다 따라오는 상자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남는 짐을 정리한 글에 더 적어 뒀어요.

여기까지가 물건을 보는 것만으로 답할 수 있는 범위예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걸려 있는 경우는 이 방법으로 안 풀려요. 그건 저도 아직 다른 답을 못 찾았고, 그래서 그 상자는 저희 집에도 아직 있습니다.

버리는 게 정답이라고 말하려는 글이 아니에요. 두는 것도 결정이면 괜찮다는 말을 하려던 겁니다.

이용철
창고 자료실 편집 담당

짐을 맡기려는 분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부터 다룹니다. 실외냐 실내냐, 얼마냐, 상하지 않느냐. 답이 갈리는 자리는 추측으로 넘기지 않고 직접 재 보거나 공개된 기준과 대조한 범위 안에서만 씁니다.